DNF LOVE

코르셋 담론 - ① 여성혐오와 코르셋 그 둘의 역사적, 사회적 연관성에 대하여 본문

Daily/ETC

코르셋 담론 - ① 여성혐오와 코르셋 그 둘의 역사적, 사회적 연관성에 대하여

botho 2019. 7. 14. 22:08
반응형

2015년 대한민국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코르셋 담론'에 대해 많은 말이 오고가고 있다.

여성학을 배우는 평범한 공학도로서 이 코르셋 담론을 여성학적 관점에 대해 조금 객관적인 지표에서 설명하기 위해 글을 쓰게 되었다.

코르셋이란 무엇일까? 

미적 목적이나 의학적 목적을 위해 몸통을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입는 옷이며 본격적으로 19세기 부터  '아름다운 허리'를 위해 여성들이 착용하였던 보정 속옥이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에선 '여성에게 가해지는 꾸밈 노등, 억압'을 의미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느껴지는 일반적인 아름다움은 우리의 의지가 아닌 미디어에서 주입한 '세뇌'라는 것. 이 세뇌를 상업적, 사회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바로 '코르셋'이다. 

즉 코르셋이란 

'산업화 이후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사회 진출이 불가피해졌지만, 여성은 남성보다 덜 된 존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가해지는 억압' 이다.

본격적으로 코르셋 담론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역사적으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을 어떻게 이용해왔는지에 대해 두 가지 예시를 들어 설명하도록 하겠다.

첫 번째, 절대 반복되어서는 안되는 끔찍한 제노사이드 '마녀사냥'이다.

마녀사냥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계층은 '미혼이거 가난한 여성'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17세기 유럽에서는 방직업이 발전되던 시기이다. 또 그와 동시에 많은 전쟁을 치루었으며 인류학적으로 여초사회였다.

이 전쟁을 통해 야기된 사회적 혼란과 가난한 사람들의 분노를 향하게 할 희생양이 필요했다. 이것이 바로 '마녀사냥'의 첫 정치적 배경이다.

마녀로 유죄선고를 받으면 가족은 재판비용, 석방 비용을 감당해야 했기에 마냐사냥은 '인간의 피에서 금을 만들어 낸 연금술'이라 불렀다.

실제, 다리와 교회 재건에 돈이 필요하니 박해 시작을 허락해 달라고 부탁하는 보고서가 존재했다.

또, 앞서 17세기는 방직업이 발전되던 시기라고 했는데, 16세기 초기 방직은 여성의 일이었다가 전쟁 후 점차 남성 방직공이 증가하게 되었다.

남성 방직공이 증가된 이후, 여성은 무거운 베틀 사용하여 일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세지 못하다는 이유로 옷감 직조 일에서 배제되었다.

(여담이지만 PMS의 배경도 세계 대전 이후 남성들을 사회에 복귀 시키기 위해 연구된 분야였다. 세계 대전 당시에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여 사회를 먹여 살렸지만 세계 대전 이후 남성 중심 사회에서는 남성이 다시 사회에 진출해야 했기 때문에 PMS가 탄생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이 전부터 일을 했던 여성이 산업화 사회에서 더 이득이겠지만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이를 받아들일리가 없었다. 그래서 PMS를 연구하여 여자는 남성에 비해 사회 진출에 맞지 않는 존재라며 선전했다.

또, 이와 비슷하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능력'대로 사람을 뽑는데 여성이 안 뽑히는 이유는 여성이 남성보다 못해서 그런가 보지! 라는 몇몇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 또한 PMS처럼 여성이 남성보다 못하다는 식의 사고에서 비롯되었고 이러한 믿음은 지속적인 유리천장을 만들어 냈다. 

이는 모두 여성의 노동이 사회에 필요할 때, 혹은 필요하지 않거나 지금처럼 필요하되 남성보다는 못나야 하는 존재여야 할 때 다양한 매커니즘으로 여성담론이 작용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남성주위 사회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건고히 하기 위해 만든 만들어낸 사회적 맥락이다.)

그러나 16~17세기는 여초사회였고 스스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여성들은 남성들과 적극적으로 경쟁을 해야 했었다.

남성들 입장에서 미혼이라 남성에게 사랑도 못 받는 존재인데 자신을 이겨 먹으려 하니 얼마나 재수없어 보였을 까.

이 처럼 남성과 경쟁해야 했던 여성들이 마녀사냥의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집단이었다.

이밖에도 마녀로 선고받은 여성들의 자백을 받기 위해 수 많은 고문이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비약적인 과학 발전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실제, 높은 위치에 존재하는 남성들은 이들이 '마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가지 정치적, 경제적 희생양이 필요했고 이를 가장 만만한 '가난하고 미혼인 여성'이 되었다.

두 번째, 코르셋과 서프러제트이다.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코르셋과 서프러제트가 비슷한 시기에 혹은 겹치는 시기에 존재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코르셋은 19세기에서 20세기에 유행했었고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반에 탄생했다.

코르셋이 존재하던 시기의 유럽 사회를 생각해보자. 

여성은 절대 작위를 가질 수 없었으며, 아버지 혹은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서만 사회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다.(즉, 남성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그 시기의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남성과 결혼을 하기 위해서 수 많은 파티를 다녀야 했었고 그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수 없이 코르셋을 쥐었을 것이다.

남들보다 허리가 더더욱 얇도록, 그로 인해 남들보다 더더욱 아름답게.

코르셋에 의하여 흉부가 압박되고 이로 인해 혈색이 창백해지고 걸을때마다 휘청거리는 것을 '미'라고 생각했고, 휘청거리는 여성을 에스코트 해주는 것이 '남성의 매너'라고 믿었다.

우리가 화장이 자기만족이라 생각했던 것 처럼, 코르셋을 쥐던 수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하며 자기 만족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코르셋을 차게 된 것은 그들의 의지가 아닌 '세뇌'였을 것이다.

그 시대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없이는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고 코르셋과 드레스와 같은 사치품에만 집착하는 굉장히 불필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몇번이고 강조하지만 이것은 '세뇌'일 뿐이다.

여성들이 '내 의지'로 코르셋을 쥘 수 밖에 없도록 사회적 매커니즘을 만든 것이다.

왜? 

여자들이 똑똑해지지 못하도록 그들의 행동을 '제약'하기 위해서. 

이렇게 되면, 남성들의 네트워크는 견고해지고 여자들은 멍청해지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쌓기 더 편해지기 때문이다.

이들이 코르셋을 쥐던 동시에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투쟁했던 운동 세력이 존재했다. 이들은 바로 '서프러제트'이다. 

코르셋과 남편과 아이를 부양하는 '안정적인 가정'을 버리고 자신과 자매들을 위해 어떠한 희생을 감수했던 그들이다.

그러나 여성의 인식과 인권이 향상될 때마다 항상 나타나는 세력이 있다. 

이것은 바로 이 흐름에 반대하는 운동 및 세력인 '백래시'이다.

이들은 서프러제트를 '남성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성' '아름다운 여성들에게 추잡한 질투를 하며 나쁜 생각을 하도록 이끄는 세력'이라며 이미지를 훼손하였다. 

실제 많은 여성들이 서프러제트들의 이미지를 소비하며 '코르셋 덕분에 아름다워져 남성에게 사랑받고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었다.'며 만족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을 보며 어떤 것이 느껴지는 가?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미적 기준은 우리의 객관적인 미의 기준인 것일까?

아니다. 

우리의 이런 미적 기준은 '세뇌'당한 '이미지'에 불과한다.

2탄에서 설명할 내용이지만,

코르셋의 시작은 '콤플렉스 증후근'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코르셋이냐 아니냐에 따른 범주는 단순히 '콤플렉스'냐 아니냐 혹은 남성은 하는가 안하는가가 아니다.

마녀사냥에 있어 경제적 정치적 과학적 사회적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적용되었던 것 처럼,

코르셋과 서프러제트의 존재로 인한 사회 이중성처럼,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한 범주에 교차되는 성질을 띈다.(이를 교차성 이론이라고 한다. 여성학에 있어서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이론이다)

2탄에서는 코르셋의 범주와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모쪼록 많은 사람들이 퍼 가며 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여성학을 공부하며 객관적 지식을 넓혀 자신의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불펌 환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