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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기억해야 할 여성 개발자

botho 2019. 9. 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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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세상이 기억하는 훌륭한 개발자들이 세상에 존재한다.

앨런 튜링, 리눅스 토발즈, 데니스 리치, 빌 게이츠, 스티븐 잡스, 폰 노이만 등.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남성 개발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엔 이름을 남긴 훌륭한 여성 개발자는 없는 것일까?


1. 세계 최초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

프로그래밍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알고리즘'이다. 이 첫 알고리즘을 생각해낸 사람은 누굴까?

그것은 19세기 영국의 러브레이스 백작 부인 에이다 러브레이스이다. 

에이다는 어릴 적 부터 많은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그 중 여성 발명가 배비지를 많이 따랐다고 한다.

배비지를 통해 '초기 컴퓨터'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베르누이 수'를 구하는 해석기관 용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비록 그녀는 수 많은 스캔들에 휘말리며 36살의 짧은 인생을 살다 갔다.


 

2. 잊혀진 에니악 여성 개발자들.

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하면 비운의 천재 수학자인 앨런 튜링을 떠올린다.

폰 노이만과 함께 현대 컴퓨터의 개념인 2진수의 개념을 언급하며 현대 컴퓨터 시대의 포문을 열었으며, 세계 대전때 암호 해독기를 개발하여 독일의 암호를 푸는 등 수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낙인 속에 살아온 비운의 천재 수학자인 앨런 튜링.

초기 애플 로고

애플의 한입 베어 먹은 로고는 앨런 튜링 그가 먹었던 독사과를 의미하며 초기 애플의 로고가 무지개 색을 띄는 이유 또한 성 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를 나타낸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최근에는 그에게 동성애자라는 낙인을 지우며 컴퓨터 계에 업적을 낸 사람들을 위한 노벨상을 그의 이름을 따 '튜링 상'이라 불리며, AI의 지식 척도를 판도내는 가장 기초적인 튜링 테스트 또한 그의 이름을 따왔다.

그의 머리로 부터 알고리즘과 에니악이 탄생되었지만, 세계 2차 대전때 에니악을 구동 시킨 것은 앨런 튜링 그가 아니었다.

탄도 미사일을 계산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10진수 컴퓨터 ENIAC을 구동 시킨 이들은 여성 프로그래머들이다.

그러나 에니악이 공개되면서 소프트웨어를 개발 시킨 것에 많은 여성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니악의 하드웨어를 개발한 대부분의 남성 엔지니어들이 찬양받았다.

이들의 활약은 오랫동안 잊혀졌으며, 여성 프로그래머들은 ENIAC 50주년 기념행사에 제대로 초청받지도 못했다. 

 


 

3. 'BUG'의 개념을 만들어 낸 미국 해군 제독 '그레이스 호퍼'

프로그램에서 발생되는 오류를 흔히 'Bug'라고 한다. 또한 이 버그를 잡는 개념을 'Debug'라고 하며 버그를 잡을 떄는 '디버깅'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버그 개념을 창시한 자는 누구일까? 그는 바로 미국의 뛰어는 컴퓨터 과학자이자 해군 제독인 '그레이스 호퍼'이다.

그녀가 군에서 근무하던 어느 여름날, 그 당시 컴퓨터의 일종인 기계식 계산기 MARK II에 오작동이 일으켜 그 이유를 찾았았다. 컴퓨터에 죽은 나방이 끼어 있었던 것.

그녀는 이렇게 프로그램의 시스템 오작동의 원인이 되는 오류를 '버그'라 일컬었다.

당시 그레이스 호퍼가 발견한 나방

또한, 그녀는 최초의 컴파일러를 개발하였으며, 미국 최초의 해군 여성 제독으로서 컴퓨터를 이용해 해군의 함정 탄도 측정 계산기를 만들어 혁신적인 명중률을 기록하는 공로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레이스 호퍼는 버그 개념 뿐만 아니라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인 유니박 I 개발에도 참여하였으며, 금융에서 많이 쓰였던 (당시의) 절차적 언어인 '코볼'언어를 주도하여 개발한 개발자이기도 하다.


 

4. 와이파이의 개념을 발명한 할리우드 대배우 '헤디 라마르'

헐리웃 스타 헤디 라마르

현대인의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절친한 친구인 노트북과 스마트폰.

스마트폰이 통신망에 연결을 하여 인터넷 통신이 가능할 수 있게 된 것은 무선통신기술 발전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개발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그는 바로 유럽 최고 미녀라 불리던 헐리웃 스타 헤미 라마르였다.

그녀는 무기상인 남편에게 회의감을 느껴 이혼을 결심하여 이름을 바꾸고 미국에 가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그녀의 능력은 가려졌고 그녀가 평생토록 맡은 역은 '미녀' 뿐이었다. 

그녀는 영화 더 헤븐리 바다에 출연 할 때 "어떤 여성도 매력적일 수 있어요. 단지 가만히 서서 바보처럼 보이기만 하면 돼요"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여성 배우를 소비하는 헐리웃에 많은 회의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능력과 지식에 열정을 쏟아붇기 시작했다. 낮에는 배우로서의 삶을 살고 밤에는 발명가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갖가지 기계장치를 분해하고 개선점을 찾고, 그를 통해 새로운 개념을 발명하였다.

그녀와 아방가르드 작곡가인 조지 앤틸은 피아노의 공명 원리에 착안에 '주파수 호핑'기술을 개발하였고 1942년 특허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발명한 목적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을 도와 잠수함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 주파수 혼란을 주기 위해 발명한 것이었으나, 미 해군이 기술이 맞지 않다며 무시되었다.

그러나 1950년, 트랜지스터의 발명으로 그녀의 기술은 무선통신 기술의 CDMA 기술로 발전되었고 후에 블루투스, 와이파이 등의 개념으로 발전되었다.

현재 떠오르고 있는 IT 기술인 5G와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또한 그녀가 없었더라면 개발이 아예 되지 않았거나, 늦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죽기 3년 전까지 공로보다는 외모와 배우로서 기억되다 1997년 미국 전자개척재단으로부터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상 소프트웨어의 역사는 여성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여성에게 프로그래밍 재능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를 막는 것은 오직 사회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장애물 밖에 없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그녀들의 위대함을 기억하며 열심히 전진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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